1987년, 대한민국은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한 해였습니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청춘들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낸 이들도 있었는데, 바로 학생 사진 기자들입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누비던 그 시절의 기록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87년도 학생 사진 기자로서의 저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 감성, 청춘, 뉴스 현장을 회상합니다.
그 시절의 사진은 지금처럼 수천 장을 찍고 고르던 디지털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한 장 한 장, 필름의 제한 속에서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야 했죠. 한 롤에 36컷, 그것이 하루의 전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의 진지한 표정, 피켓을 든 시민의 눈빛, 경찰과 대치하던 아슬아슬한 긴장감까지. 당시 학생 사진 기자였던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한 장이, 누군가에겐 역사가 될 수 있겠구나.” 감성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낭만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차가운 현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고, 불안한 시대를 마주한 청춘의 시선이기도 했습니다. 어두운 암실에서 조명 아래 사진을 현상하던 그 순간은, 마치 감정을 현상하는 시간이기도 했죠. 흑백 사진 속에 담긴 진심은 지금 다시 봐도 전율을 일으킵니다. 필름 속 87년은 그렇게 우리의 눈과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셔터 한 번에 담긴 감성은 단지 기록이 아닌 기억, 그 자체였습니다.
1987년의 대학 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강의보다 더 중요했던 건 시국이었고, 매일매일이 사건의 연속이었죠. 나 또한 학생 사진 기자로서 수업 대신 거리로 나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구호를 외치고, 나는 그 장면을 찍었죠. 모두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피곤해도 다음 날이면 또다시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도 올라가고, 위험한 상황에도 가까이 가야 했습니다. 청춘이기에 가능했던 용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 용기가 있었기에 우리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세상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사진 속에 남아 있습니다. 웃는 얼굴, 다친 손, 흙먼지를 뒤집어쓴 옷, 그리고 밤늦게 돌아오는 지하철 안의 조용한 모습까지. 87년의 청춘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천과 기록으로 이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기자로서의 가장 큰 책임감은 ‘진실을 포착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주류 언론은 많은 부분을 왜곡하거나 침묵했습니다. 그렇기에 학생 기자들의 사진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직접 목격하고, 찍고, 학교 신문에 실었습니다. 비록 작은 매체였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뉴스와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정제된 보도보다, 때로는 흐릿한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했죠. 내가 찍은 사진 중 하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손을 잡고 울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아무 설명이 없었지만, 모두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진이 말하는 힘, 그것이 바로 학생 사진 기자로서 가장 값졌던 순간이었습니다. 필름에 담긴 진실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습니다. 지금도 앨범을 펼치면, 그날의 소리와 냄새, 분위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역사를 찍고 있었고, 동시에 그 역사의 일부였습니다.
필름 속 87년은 단순한 사진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성으로 기억되고, 청춘으로 살아 있었으며, 뉴스보다 깊은 진실을 담고 있던 시대의 산 증거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그때의 감성과 용기를 되새기며, 사진 한 장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